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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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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형체가 없다. 
그럼에도 어떤 슬픔은 선명한 푸른색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며, 차갑고, 냉정했다. 
또 어떤 슬픔은 무게를 지닌다.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에 맺혀 숨이 막힌다. 
'어떤 슬픔'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들에게 잔인하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을 마주하고, 거기서 쏟아진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벅찼다. 이제 열여덟이 된 아이들은 너무도 미숙하여, 그걸 흘려내는 법도, 받아들이는 법도, 이겨내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저 감정을 떠받치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이 꺾이지 않기만을 바라며, 위태롭게.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고 싶어 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리고 인간은 한없이 어리석다. 아니, 아만다 로이드가 어리석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자꾸 매달리고 후회했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일이었을까. 그때도, 지금도. 적절한 답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무수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는, 덧칠한 종이처럼 까맣고 너덜너덜해졌는데도. 자학에 가까운 사고가 멈추지 않는다. 더 나은 방향이 있지 않았을까.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는 제 살을 파고들 뿐이다. 감정이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감정을 따라간다. 휘둘린다. 시야를 새파랗게 물들여 버린 슬픔이, 사고회로를 고장 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적당한 단어와 표현을 알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겪은 상실을 설명할 말이 없었다.
 
비워둔 자리, 모자라는 숫자.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망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증거.
파란 슬픔이 흘렀다. 날카롭고 무거운 추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힘든 밤이다.
고작 열여덟인 우물 안의 개구리, 고작해야 가정의 불화가 지녔던 불행의 전부인 애송이에게. 아직도 사춘기, 꿈도 미래도 모르겠다는 철부지에게. 어른스럽고 이성적인 척, 강하고 괜찮은 척 했던 겉면을 뒤집으면, 어리고 약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심스러운 인간에게. 아만다 바바라 로이드에게. 자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과연 다행일까 불행일까.
자신이 뭔가 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오만한 자책과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붙들려는, 어리석은 후회는. 지독한 불면의 오랜 친구였으니.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진다. 눈을 감는 것이 겁났다. 잠에 드는 것이 두렵다. 밝아올 내일이 무섭다. 더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가, 잊지 못할 이름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 두려워 그러했다.
 
유난히 조용한 새벽이다. 누군가의 훌쩍임과 탄식이, 누군가의 걱정과 불안이, 또 다른 누군가의 공허함과 허무함이 가득했음에도. 유난히도 조용한 새벽이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맞을까. 과연 내일의 해는 우리의 편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만 가득한 새벽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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